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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플로우 (Flow, 2024) 부국제 오픈시네마 후기, 감독 GV

조경수 2024. 10. 5. 14:03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스타트는 야외극장으로 끊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를 안 하고 갔지만 어쨌거나 내 기대와는 좀 다른 영화였다. 일단 스토리를 우선시한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우선 영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감독이 잠시 무대에 올랐다. 준비된 이런저런 질문에 답하는 시간으로, 직접 음악을 신경써서 만들었다는 말에 음악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작중에 카피바라를 넣고 싶어서 카피바라의 소리를 연구하고자 직접 보러 갔으나, 카피바라의 소리가 생각보다 하이피치라서 관객들이 믿지 않을까봐 카피바라는 다른 소리로 대체했다고 하는 것이다. 작중에 나레아션이라든가, 사람 목소리라든가 인간언어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고양이 소리, 강아지 소리, 새 소리 등등 동물들의 소리로만 발성이 이뤄진다. 이것의 의도가 혹시 동물들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면, 굳이 카피바라의 소리는 임의로 더빙할 필요가 있었을까? 오히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려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라서 이 시점에 감독에게 신뢰를 조금 잃었다.




<줄거리>

플로우는 주인공격인 검은 고양이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따라가며 시작한다. 개들과 쫓고 쫓기기도 하고, 새로운 새도 만나고... 그러다 갑자기 물이 땅을 덮쳐서 순식간에 집을 잃게 된다. 여우원숭이, 카피바라, 커다란 새 (무슨 새인지 모르겠다),  개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난관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다.

스포 없이 이야기하자면 일단 작화 수준이 왔다 갔다 한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무진장 귀엽고 강아지들이 하나하나 털결이 차르르하며 카피바라는 뚱실뚱실하고 커다란 새는 아름답다.
그런데 영화가 길어질수록 흔히 말하는 작붕이 점차 눈에 띄더니 막판에는 꽤 자주 동물들 얼굴이 달라진다...

다음으로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시각으로 그려낸 동물들이 눈에 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어떤 동물은 수집을 너무 좋아해서 물건을 놓질 못하고 거울 보길 즐겨하고 심지어 장신구를 주렁주렁 달고 있고... 이게 진짜 그 동물의 특성이라더라도 너무 인간의 편견이 들어있는 느낌. (근데 그 동물 특성 아닐 듯)
게다가 동물들의 협동이 꽤 인간적이다. 어떤 동물 구하는 게 있는데 그 방식이 너무나 도르래를 이용할 줄 아는 휴먼의 것인 게...

다음으로 스토리 진행이 많이 늘어진다.
거울 좋아하는 동물 한 번 보여주면 됐지 그 거울 보는 거 몇 번이나 계속 보여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 영화가 동물들의 협동이라는 주제도 가지고 있다는데 협동보다는 각 동물들의 귀여움을 뽐내는 게 여러 번이라 긴장감이 다소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 스토리가 내게 마이너스로 다가왔다.
여기부터는 스포
모두가 예상 가능하겠지만 고양이가 물난리를 피해 도망다니다가 어쨌든 살아남는 게 전체 스토리라인이다. 그러면 재난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 것까지는 안 바라도 어떻게 재난을 헤쳐나갔는지는 설명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물은 한번에 육지를 덮었다가 느닷없이 10초만에 육지에서 내려간다. 너무 갑자기 고양이를 죽을 위기에 밀어넣더니 나무들이 땅에서 솟아난다. 물이 빠진다는 느낌보다는 땅이 밑바닥에서 급격하게 일어나느라고 나무들이 허겁지겁 밀어올려진다. 고양이는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왜?
게다가 고양이, 개, 카피바라, 여우원숭이는 배에 탔으니 살아남았다 치지만 대형무리인 순록떼는 어떻게 살아남은 건데... 물이 빠지니까 갑자기 순록떼가 공룡떼 달려가듯 고양이를 스쳐지나갔거든
백번 양보해서 홍수가 일종의 불가항력의 재해였다고 치자. 만약 이게 노아의방주/인간심판 컨셉이라면 납득이 가능하다. 인간을 심판하니 나무도 순록도 그냥 살아남은 거다. (그러면 고래는 왜 죽은 건데...) 인간의 존재를 상정하는 이유는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원래 집에는 인간이 썼던 침대, 책상, 인간이 그린 고양이 그림과 인간이 만든 고양이 조각상들이 있었다.
혹은 이게 환경재난의 비유라면 납득할 수 있다. 인간이 일으킨 환경재난은 동물들에게 이해할 수 없이 갑자기 닥치는 고난일 것이다.

물은 어떻게든 납득했다 쳐도 절대 넘어갈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대형 새의 승천이다.
물이 다 빠지기 직전에 대형 새와 고양이가 웬 높은 곳에 도달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오로라와 휘몰아치며 새와 고양이를 하늘로 두둥실 띄운다. 새는 날갯짓하여 그대로 하늘로 사라지고 고양이는 다시 땅으로 돌아온다. 이때 새와 고양이가 디디고 있던 지점에는 원형 진이 그려져 있다. (안 보여서) 알 수 없는 문자로 채워진 원형 (마법) 진이 무언가를 암시할 텐데 그냥 그렇게 끝났다.




감독
긴츠 질발로디스 Gints ZILBALODIS
라트비아의 영화감독이자 애니메이터.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콩트르샹상을 수상한 <어웨이>(2019)의 감독으로 유명하다. 신작 <플로우>는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상영된 후 전 세계에서 극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