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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미스터리] 생물학 접목으로 재밌어진 더프리빌리지(Das Privileg)

조경수 2022. 3. 1. 15:46

더 프리빌리지

Das Privileg (The Privilege), 2022

드라마, 호러, 미스터리, SF

독일 영화, 1h 47m

 

 

기생하는 곰팡이, 검은 형상의 귀신, 갑자기 자살하거나 살해 당하는 마을 사람들...

거기에 하이틴 로맨스까지 섞어서 그야말로 뷔페가 되다 만 짬뽕 영화다.

 

전개가 시원시원하고 빠른 편이다.

주인공이 조금 순진하긴 하지만 물불 안 가리고 바로 뛰어드는 성격이라 답답하지 않다.

워낙 다양한 소재를 버무렸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별로 없는 영화다.

'바이오해커스 (크리스티안 디터)'와 '침입자 (손원평, 2021)'를 재미있게 봤다면 이 영화도 괜찮게 볼지도? 나는 바이오해커스를 기대했지만 실은 오컬트를 잔뜩 타서 침입자 형식으로 진행한 느낌이다.

 

잔인성은 이 정도 성인영화에 흔한 수준이다. 딱히 기억나는 끔찍한 장면은 없는 것 같고 피가 나오는데 유달리 꾸덕하게 만들어서 질감이 잘 보였다. 

유럽의 차갑고 담백한 영상 느낌이 나서 좋았다. 각 인물별로 색상을 나눠 표현하면서도 채도가 낮아서 특유의 분위기가 났다. 덕분에 인물들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또한 부유층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한층 더 부유한 주인공 집이 돋보여서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과 떨어져 굳이 잘 포장된 다리 하나를 넘어가야 주인공의 집이 나온다. 깎아지른 절벽에 틀어박혀 통유리와 드넓은 저택 생활을 즐기는 주인공 가족... 맨날 싱싱한 과일채소가 식탁에 올려져 있고 파티 다녀온다 하면 턱턱 차키를 던져주며 본인들은 트레드밀을 즐기시는 멋진 부모님과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삶. 이게 제목의 그 특권일까? 

제목에 당당히 '특권'이라고 써놨으며 줄거리에는 부유한 백인임을 강조했길래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인가 싶었지만... 이 특권은 그 특권이 아니었다.

그저 이 영화가 어디에 더 방점을 두고 있는지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감독의 욕심이 조금 지나쳤다고 본다. 너무 많은 소재를 한 영화에 넣겠다는 야심이 내내 느껴졌다..

나는 기생 곰팡이 하나에 끌려서 이 영화를 봤기 때문에 귀신이니 외계인이니 이것저것 우겨넣은 건 내심 삭제해주길 바랐다. 약간 순번제 느낌? ㅋㅋㅋ 귀신-곰팡이-하이틴로맨스-귀신-곰팡이... 이런 느낌으로 돌고 돈다. 만약 SF/오컬트/하이틴을 좋아하는 친구 3명이 모인다면 이 영화를 보면 되겠다. 

 

 


스포 주의

 

영화는 주인공의 누나 '아나'가 의문의 자살을 하면서 시작된다.

그때 아가였던 주인공 '핀'은 트라우마를 안은 채 어엿한 고등학생이 된다.

정기적으로 '슈타잉케' 박사에게 심리검사와 체력검사를 받는데,

박사는 지난번보다 15% 떨어졌다는 둥, 네 부모님이 널 아껴서 다행인 거라고 생각하라는 둥

부진한 실험체를 보듯 말한다.

 

그래도 주인공의 학교생활은 나쁘지 않다.

믿을 만한 친구 '레나'도 있고

하이틴 로맨스의 필수조건인 짝사랑대상 '사미라'도 있다.

필수조건이라고 하니 말인데 주인공의 이성인 친구를 꼭 퀴어로 설정하는 것도 최신 하이틴 공식인가 싶다.

 

어쨌든 수업에서 이런 내용이 다짜고짜 나온다. 

 

 

 

주인공 핀과 친구 레나

 

이걸 보고 인간을 조종하는 기생 곰팡이에 대한 영화인 줄 알고 흥미진진하게 보기 시작했다.

나는 동충하초라고 개념을 이해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동충하초와 비슷하지만 좀비개미에 가까웠다.

좀비 개미 조종자는 곰팡이 (kisti.re.kr)

 

좀비 개미 조종자는 곰팡이

영화 소재로 즐겨 사용되는 좀비(zombie)는 중앙아메리카의 설화에서 유래됐다. 주술사가 마술적인 방법으로 소생시킨 시체들을 일컫는 말로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정신세계는 주술사의

scienceon.kisti.re.kr

 

 

주인공은 자꾸만 (기생곰팡이 때문에) 불면증과 환각에 시달리지만 강단있게 진실을 알고자 파고든다.

솔직히 '침입자'보다 불안정함이 덜해서 좋았다.. 그 영화는 주인공의 심리에 달라붙어서 시청자들조차 주인공을 의심하게끔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나는 좀 답답했다. 차라리 이 영화처럼 주인공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게 속시원하다.

 

어쨌든 영화는 중구난방으로 흘러간다. 

개인적으로는 기생곰팡이 하나만 밀고 나갔어도 좋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괜히 초능력이랑 엑소시즘 넣어서 작품의 질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투병하는 할아버지가 나오자마자 아 이 사람 지금 주인공 몸을 노리고 있구만 하는 생각이 딱 들 정도로 시청자에게 확실한 소재였는데.

곰팡이편과 귀신편, 외계인편을 각기 다른 작가가 써서 끼워맞춘 거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로 ㅋㅋ

 

 

곰팡이 얘기부터 해보면

주인공과 주인공의 쌍둥이가 슈타잉케 박사에게 받아서 쭉 먹어온 약이 있다.

그동안 잘 먹어왔는데, 주변 상황이 의뭉스럽게 돌아가자

드디어 의심을 하더니 문득! 기생 곰팡이를 발견한다..

 

(징그러움 주의)

 

약을 갈라보니 기생 곰팡이가 나왔다

 

저건 이 영화의 명장면이다.

아깝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다면 제목을 '동충하초'로 할 수 있었는데...

정말 아까운 건 동충하초를 잔뜩 넣은 약을 애들 모르게 먹여서 숙주로 만든다는 재미난 소재를 귀신이랑 섞어버렸다는 점이다. 

 

여하튼 이걸 발견하고 학교 선생님한테 물어보니

무려 사체에서만 서식하는 곰팡이였으며 이 지역에선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라민'이는 곰팡이 배양배지가 되었겠군..

선생님이 전문가의 명함을 줬는데 정확히 '진핵생물 및 반화학적 과정 전문' (...)

당연히 직진본능을 가진 주인공과 친구 레나는 전문가를 찾아가기 위해 한달음에 차를 몰고 타지에 있는 농장까지 질주한다.

15분에 50유로나 하는 '엘리스카 노파크' 박사와의 만남을 가지며 (주인공이 금수저면 이런 데서 막히지 않는다)

곰팡이의 정체를 알아내는데... 이 농장이 신기했다.

뭐 뱀이나 거미는 기본이고 특이한 식물들이 한가득 이쁨받으며(?) 키워지고 있었다.

 

학생 장난하니

 

 

주인공은 엘리스카 박사에게 사실대로 털어놓는다. 저 이 균을 복용해왔는데요...하니까 엘리스카가 눈을 딱 노려봤다.

째려보는 걸로 구충을 해버린다. 수술하거나 획기적으로 발명한 치료제를 먹였으면 재밌었을텐데.

엘리스카 눈을 바라보니 주인공의 뱃속에서 기생곰팡이가 꾸물꾸물 기어올라와서 주인공이 토해냈다.

여기서부터 귀신편으로 넘어왔다고 해야 할까? 눈으로 벌레 잡는 건 아무래도 구마의식 같으니..

근데 이 시점에서 엘리스카 박사의 능력은 증명한 셈이니 얼른 데려가서 동생 구충(구마)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적인 흐름이 아닐까? 박사가 퇴마의식을 해주겠다고 하니 별안간 주인공이 그냥 뛰쳐나갔다.

남겨진 시청자만 물음표 상태가 됐다. 

 

 

결말

결국 엘리스카 박사를 집으로 불러서 구마의식을 진행하지만, 부모님이 알아채는 바람에 의식은 실패하고 엘리스카 박사는 사망한다.

주인공과 레나는 곰팡이가 든 그 약의 정체를 조사하다가 곰팡이 배양지를 찾아낸다. 그동안 원인불명으로 죽어나갔던 사람들의 시체를 다 모아놓고 곰팡이를 배양하는 중이었다. 약은 이미 많이 개발되어서 지역광고까지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런 것치고 시체 수가 좀 적어보였다. 벌레도 뭐 일일이 손으로 채취해야 하고)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죽어가면서 주인공은 몸을 빼앗길 위험에 처한다.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된다.

 

알고 보니 이 부유층 마을 어른들 모두가 한통속이었다. 이들은 세계 각지에서 아이들을 입양했고, 주인공을 포함해서 이 마을의 모든 청소년들이 다 그렇게 입양된 아이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기생곰팡이를 먹여가면서 일종의 보험 혹은 다음에 갈아탈 육체로 키우는 것이다.

주인공 동생의 몸은 이미 할머니가 차지한 뒤였다. 주인공도 할아버지에게, 레나는 (아마도) 엄마에게 육체를 강탈당할 운명이었다.

물론 그렇게 끝나면 안 되니까 주인공과 레나는 기지를 발휘해 '부모'들을 죽이고 도망친다.

 

 

그렇다면 이 어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분명하게 귀신이다, 외계인이다, 하고 딱 말해주진 않는다.

그러나 염력을 비롯해 힘을 쓰는 장면이 있고, 검은 형체로 나돌아다니며, 기생곰팡이를 매개로 인간의 육체를 갈아탄다는 점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어른 중 하나가 영생을 언급했다.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외계인설이 기본 틀인 것 같다.

머나먼 과거부터 인간의 몸에 기생해서 영생을 누려온 외계종족이 기생곰팡이로 인간을 조종하며 끝없이 육체를 갈아타는 것이다. 부와 젊음을 영위하기 위해 아예 값비싼 동네를 하나 형성하고, 

전세계에서 조건에 맞는 아이들을 일찌감치 입양해서 몸을 빼앗으면서 살아가는 이야기.. 그 정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