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Good Hands
2022.03.21
1h 44m, 드라마
Director: Ketche
Screenplay: Hakan Bonomo
주인공이 밀라 쿠니스 닮아서, 그리고 애가 귀여워보여서 봤다.
솔직히 기대는 안 했고 클리셰범벅에 적당히 발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매우 아름다운 영화인데다 나름대로 괜찮은 반전이 있어서 정말이지 만족스러웠다.
시한부 주인공의 로맨틱 코미디,
말만 들어도 뻔하고 감성팔이할 것 같아서 피하고 싶어진다.
더 이상 새로운 건 없을 것만 같은 시한부 소재에 이런 신선함을 줄 수 있다니 감동받았다.
자칫하면 음울엔딩인데, 모두가 결국에 행복해지는 결말이라서 흐뭇하게 감상을 마칠 수 있다.
감상포인트가 몇 가지 있다. (스포는 조금)
1. 내가 다 몰입하게 되는 주인공
밀라 쿠니스 닮아서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이 배우만의 특별한 매력에 빠졌다.
주인공 멜리사 역을 맡은 Aslı Enver는 터키 배우로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종종 밀라 쿠니스 얼굴이 떠오른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그에게는 그만의 코미디 감성이 있듯
이 배우도 확실한 캐릭터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잔 (아들)이랑 놀고 싸우고 보살피고 하는 장면도 좋게 봤지만
특히 작정하고 프라트를 낚으러 간 초반부가 재미있었다.
로맨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그래서 느닷없이 바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 같은 건 좀 스킵했지만서도...
프라트를 휘어잡는 멜리사의 얼굴과 분위기와 모든 것이 너무 매력적이라서 마치 내가 프라트가 된 것처럼 멜리사만 쳐다봤다. 등장인물에 이입된 적이 별로 없고 심지어 아저씨의 기분을 같이 느낄 줄은 몰랐지만 그만큼 멜리사는 엄청났다. 사람들이 왜 로맨스물에 이입하는지 조금은 이해를 했다.
2. 연기천재 아들
잔을 연기한 Mert Ege는 예고편부터 알 수 있겠지만 굉장히 연기를 잘한다.
세상에 엄마와 자신밖에 없는 것처럼 친밀하고 돈독한 어린 자식인 동시에
자신과 엄마에게 피해 주는 사람들에게 전혀 지지 않고 맞서는 당찬 아이다.
때로는 주변 어른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사고뭉치지만
가족들의 사랑이 몹시 필요한 연약한 아이이기도 하다.그런 연기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배우의 이야기를 알고 싶었는데, 찾아보니 나이를 비롯해 많은 것들이 알려져 있지 않다.배역 자체가 6살인 만큼 9-14살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 모양이다. 확실히 어린 배우인 만큼 보호가 필요하겠다 생각된다.다만 배우 어머니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mertegeakofficial)과 유투브가 있어서 얼굴을 볼 수 있다.
3. 그밖의 인물들
주인공과 같이 카페에서 일하며 그림 그리는 친구도 선뜻 잔을 맡아주겠다 할 만큼 따뜻하고 또 활발한 매력이 있어서 좋았다. 멜리사가 힘든 중반부를 겪을 때 잔을 잠시 돌봐줄 친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프라트 얘기도 여기다 쓰려 했는데 스포 없이는 안 될 것 같아서 넘긴다.
아래부터는 스포 주의
4. 반전
(스포주의)
멜리사는 잔과 둘이서 사는 싱글맘이다.
잔의 아빠는 죽었으며 아기 시절 잔과 셋이 찍은 사진만이 남아있다. 그 사진 때문에 관객들이 홀라당 속아넘어간 거다. 나도 한 의심 하는데 반전물이란 걸 몰랐어도 이건 예상 밖이었다. 한창 프라트와 멜리사, 잔 셋의 관계가 친밀하게 발전하는 와중에 영화 중반부에 으레 터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잔이 아빠를 발견한 것이다.
사실 내가 사람 얼굴을 못 외우기 때문에, 그냥 잔이 불안정해서 모르는 중년 아저씨 보고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로 죽은 줄 알았던 사진 속 아빠가 멀쩡히 살아서 모르는 아내와 두 딸이랑 같이 있는 것이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냥 이혼한 건데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 걸까? 프라트도 똑같은 생각을 해서 멜리사에게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 거짓말을 하냐고 추궁했다. 이 시점에서 프라트가 자신보다 잔의 마음을 걱정한다는 게 보여서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영화는 그로부터 한동안 관객들을 혼란 속에 빠뜨리고 멜리사와 잔, 프라트 모두가 실의 속에서 괴로워하게 냅둔다.
멜리사는 프라트를 찾아가 모든 진실을 털어놓는다.
사실 잔은 프라트의 아들이었다.
프라트가 원나잇을 즐기던 시절, 순진하고 어렸던 멜리사는 프라트에게 반해서 원나잇을 한다. 그날 멜리사는 원나잇이라 생각해서 프라트에게 작별인사를 하지만, 프라트는 다시 돌아오겠다며 책상 위의 퍼즐 한 조각을 들고 간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영화에서 간혹 나오던 퍼즐이 그냥 오브제가 아니라 트라우마의 큰 조각이었던 셈이다. 멜리사는 임신 사실을 알고 연락하려 했지만 어떤 경로로도 닿을 수가 없었다. 프라트는 원나잇에도 피임하지 않는 젊은이였으니 당연히 뭐 한 번 잤던 사람이 연락오는 것 정도야 말끔하게 무시한 것이다.
멜리사는 괴로워했지만 혼자 힘으로 아이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잘 살아가는데 더 거센 시련이 찾아왔다.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크게 낙심했을 것 같다. 굳센 멜리사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잔을 보살펴줄 방법 (친구라든지)을 고민하는데, 때마침 프라트가 제발로 나타났다. 다시 생각해보면 카페에서 프라트와 마주쳤을 때, 나는 멜리사가 먼저 프라트를 발견한 것이 조금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연애대상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고통을 남겨줬던 지난날의 사랑을 알아본 장면이었다. 멜리사는 프라트와 몇 번이나 마주치고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힌 트라우마, 퍼즐 꿈을 꾸고 나서야 프라트와 잔을 만나게 하기로 결정했다. 초반에 뜬금없이 퍼즐 조각이 나오면서 멜리사가 힘들어했던 것의 이유가 밝혀진 순간이다.
여기까지 영화를 보고 프라트를 용서할 관객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대표적으론 아무리 원나잇이어도 피임을 하지 않은 죄, 그리고 마치 돌아올 것처럼 기만한 죄가 가장 크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나름의 틀을 확실히 지킨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부터 해피엔딩과 사랑스러운 가족의 분위기를 팍팍 풍기면서 진행했으니 그 틀대로 착실히 진행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반전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영화 안에서 스스로 세운 룰과 분위기를 지키지 않으면 아무리 기똥찬 반전이라도 맛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피폐물인 척 하다가 해피엔딩으로 급전개한다든지 그 반대라든지 그런 거.
어쨌거나 프라트는 진심으로 속죄한다. 잔을 돌보며 멜리사의 마지막을 지킨다. 영화는 꽉 닫힌 결말을 준다. 잔과 함께 바다에 놀러간 프라트의 모습으로 마지막을 장식한 것이다. 포인트는 속죄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프라트는 속죄뿐 아니라 그 둘을 진심으로 사랑함으로써 아름다운 결말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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