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GV는 처음이었다. 먼저 감독&배우들 소개를 하고, 관객들과 같이(!) 영화를 관람한 다음 GV를 진행했다.
상영 전 무대인사 때 족히 세네 번 이상 이 영화에 대한 우려를 표해서 묘했다. 독특하다든가, 취향에 안 맞을 수도 있다고 해서 마치 밑밥을 까는 느낌이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니 이건 독특하다기보다 흔히 말하는 '난해한 독립영화'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시놉시스는 아래와 같다.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차를 몰고 돌아다니며 살인을 저지른다. 시체, 총, 칼, 로프, 술병 등이 여기저기 어지럽다. 들, 숲, 강, 바다, 도심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 함께라면 어디든 간다.
이제 보니 시놉시스가 매우 정확했구나 싶다.
백설공주와 사냥꾼은 관객들과 일부러 공유하지 않는 배타적인 관계를 맺은 채 이유 없어보이지만 기준이 분명한 살인을 하고 돌아다닌다. 그게 이야기의 처음이자 끝
아무튼 여기부터는 스포
영화 보고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1. 저예산
감독 이름으로 수놓인 엔딩크레딧을 보면서 모두가 감탄했지만 정말로 영화 내내 저예산의 향기가 났다. 그게 또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보면서 주인공 두 명의 의상이 굉장히 한정적이라서(1인당 2벌 수준) 배우들이 직접 의상을 가져왔겠구나 생각했는데, GV를 들어보니 그 이상으로 배우와 제작진이 서로 자급자족하며 찍은 모양이었다.
카메라며 화질이며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익숙해도, 빈번한 후녹음과 음향 문제는 눈에 띄긴 했다 ^^.
예산 때문에 재밌었던 부분이 바 장면이었다.
여주가 어떤 남자와 술을 마시러 갔는데,
에어비앤비st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여느 가정집에 있을 법한 (우리집에도 있는) 크리스탈 잔에 포도주(스)를 따라 먹었다. ㅋㅋㅋ
남주는 그 옆 테이블에서 술을 홀짝이는 컨셉이었지만 보기에는 그저 남의 집 거실 소파 옆에 앉아 크리스털 잔을 들고 있는 느낌이었고..
압권은 바텐더들이었다.
가정집 주방에서 나름의 유니폼을 입고 서있었다 ^^... 여기 바 장면에서 몰입이 깨지고 솔직히 웃겼다... 저예산의 노력은 인정합니다.
2. 여주
여주가 영화 내내 입고 다니는 <빨간 원피스 + 청자켓> 조합은 꽤나 낡은 클리셰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구닥다리 여자주인공 형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배우는 잘 소화해냈다.
또 그냥 내 눈에는 빨강원피스에 하얀 피부가 백설공주 스타일로 보였다. 게다가 온통 갈색인 사냥꾼이 그녀를 무조건 따라다니고..
중요한 건 백설공주가 외계인이라는 점이다.
외계인 이야기는 나중에 쓰겠지만, 백설은 영화 중간중간 외계 경험을 이야기한다. 시청자들은 그녀가 외계인인지, 정신질환이 있는지 헷갈리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불가사의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모든 논란을 종식시킨다(고 생각한다...).
3. 남주
남자는 계속 전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갈색 그 자체다.
맨날 입는 갈색 작업복...은 작업복치고 멋을 부린 것 같지만 아무튼 갈색 피부톤, 그리고 흙빛 안색과 어우러져서 그를 완전갈색인간으로 보이게 한다. 사냥꾼의 완성
4. 둘의 관계
둘은 관객을 따돌리고 자기들만의 독점적 배타적 관계를 형성해나간다. 사실 영화 초반에만 해도 그다지 끈끈해보이지 않았는데 남자 멘트는 또 너 없음 안 돼 수준이었고, 후반 갈수록 둘이 놀다가 죽음을 불사하게 되어버린다.
각자의 배경이라든가, 둘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등 설명/암시는 없다. 내 생각에 그게 없는 이유는 감독이 구상하지 않아서 같다. 감독님은 미친 두 사람이 폭력 저지르고 다니며 서로 사랑하는 이 장면을 상상하고 그걸 손수 만들고 싶어서 이 영화를 찍은 것이라는 감상이다.
그래서 (원래는 캐릭터의 배경이란 알면 알수록 즐겁지만) 이 영화는 나도 둘의 배경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보였다.
처음에 로맨틱 관계는 아니어보였던 두 사람은 육체적 관계로도 나아간다. (나는 내심 플라토닉을 바랐으니 허황된 꿈으로...) 그걸 자꾸 손가락으로 표현하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그것도 모자라 새들을 등장시켜서 노골적으로 알려준다.
이런 그들에게는 임신도 하나의 놀이다.
처음 육체 관계 암시가 나온 다음에 갑자기 여주 배가 불러있길래, 이렇게 오랫동안 둘이 다닌 건가;; 했으나 바로 다음 씬에 처참한 애기 인형을 차에 놓고 달리고 있었다. 내 생각에 임신한 것이 아니라 임신놀이를 한 듯하다. 아마도 어떤 자기들만의 망가진 영혼과 전쟁 상태와 뒤틀린 사회를 향한 체념 섞인 반항이 아닐까....;
초반에는 남자가 "나 없으면 어떻게 할 거야"스러운 질문을 던지고 여자가 글쎄 하면서 넘겼는데,
후반에는 같이 죽기로 결정해서 권총자살을 꾀하는 단계까지 간다.
5. 감독의 말
GV 때 질문을 들어보니 이 감독의 세계관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예전 작품에서부터.
그리고 이 영화의 시작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빵가게습격>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부부가 빵가게 터는 게 재밌었다고 하네요~
보니 앤 클라이드 구상도 가미되었고, 무엇보다 현 세대 청춘들의 폭력적인 점을 풍자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 표현을 되풀이하면서 꼭 강조하셨다.
더해서 이방인, 칼리굴라, 제5도살장에도 영감 받았다는 언급이 있었다. 그럴 것 같았다^^
감독님은 20년 이상 요리했다가 영화 만들고 싶어서 감독 시작했고 그 3번째 작품이다.
크레딧 보니 음악도 다 직접 만드셨던데 역시 관련된 질문이 나왔다.
감독님은 요리하던 시절 불면이 심하여 음악-> 힙합에 빠졌는데, 동네의 힙합하는 동생들한테 비트 받아서 쓰기고 하고, 직접 만든 비트도 있고... 신스/일렉 등 쓰면서 젊은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젊은, 독특한, 몽환적인 그런. 클래식은 모차르트 등을 영화에 쓰니 행복하다고 하셨다. 일례로 지구 나오는 부분은 모차르트의 라크리모사를 쓰면서 이 영화 주제를 함축시키고자 했다.
6. 외계인 논쟁
논쟁이라 쓴 이유는 감독님이 외계인을 메타포로 쓴 반면 나는 안 그렇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 ;;
질문 중에 영화 언더더스킨 생각이 많이 난다는 사람이 있었다. 감독님도 그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감독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 폭력적인 젊은이들이 살해를 하고 다닌다는 현실에 차라리 그들이 외계인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영화 보는 사람들한테는 외계인으로 보여도 된다고 하나, 감독은 이들을 인간으로 두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 행보가 너무 폭력적이니 끔찍해서 차라리 외계인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 합니다.. 중간중간 이정민이 설명하는 지구 박살의 이미지 같은 걸 심은 것도, 그런 부분을 전달하고 싶었던 거라 한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요인 때문에 주인공들을 외계인으로 생각한다.
하나는 영화 내용이다.
영화 후반에 주인공 두 명이 초능력을 발휘한다. 두 남자에게 각각 쫓기게 되는데, 언령으로 제압한다. 여주가 적한테 죽으라고 하니 고통스럽게 죽기 시작하고, 편하게 죽으라고 해서 단숨에 죽어준다.
남주도 적에게 총 버리라고 했나? 아무튼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
다른 하나는 내 취향 때문이다: 칼을 뺐으면 뭐라도 베어야 한다.
컨텐츠에 평범하지 않은 컨셉을 부여하겠다고 들이민 이상 노잼 선을 타는 건 곤란하다... 마지막에 어린왕자 바이브로 두 외계인이 지구 탈출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재밌지 않나 하하...
7. 사회비판 요소
감독님은 이 세대의 폭력적 세태를 드러내고 싶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사회영화/고어영화를 줄기차게 본 나로서는 둘다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갑자기 사회 면을 짚자면... 나는 이 세대가 특별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폭력은 고대부터 유구히 내려온 전통으로, 우리가 매스컴을 통해 알지 못했다고 해서 특별히 이전에 폭력이 적었다거나 지금 폭증했다거나 하지 않았다고 본다.
게다가 두 주인공은 요즘 영화치고 특별히 나쁘지도 끔찍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일단 기준이 너무 분명하고 선하다. 무조건 "나쁜 사람"만 고른다. 초등학생 납치하려는 사람(아 이것도 비유적인 건 좋았는데 관객들이 못 알아들을까봐 너무 노골적으로 오래 보여줬다),
고등학생에게 (성매매 요구하고) 폭력 휘두른 사람, 주인공들의 차를 강탈하려 한 사람 등...
감독님이 주인공들을 사랑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관객들에게 사랑받게 하고 싶어서인지 선악이 분명한 상태에서 살인 관념만 모호한 인간상을 만들어줬다. 보니앤클라이드라기엔 너무 착한~
하긴 진짜 폭력적 세대를 보여주려면 극악무도해야 하는데 또 주인공들이 할머니 때리고 아기 죽이는 건 내 쪽에서 거부니까 할말이 없네.
잔인한 영화냐고 묻는다면 내 기준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었으나 이건 내가 쓸데없이 고어물에 익숙해서 그런 거니 넘어간다...
8. 속도
장면장면을 난해하게 편집하고 조각낸 건 괜찮은데
속도가 너무 느려서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하나하나 몇 분씩이나 보여주니, 뭐든지 배속으로 보는 고약한 성질을 가진 나로서는
아무튼 이렇게 많이 써낸 걸 보니 어쨌든 재밌게 관람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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